A. 일상

임종한 환자의 보호자를 만난다는 것은

Dr.A 2021. 6. 6.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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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 오랜기간 근무를 하다보면 재밌는 일이 꽤나 많다.

외래 들어 오시자마자 본인이 쓴 자서전이라며 책을 건네주시는 아버님, 본인 사과농장에서 만든 사과즙이라고 택배로 보내주시는 보호자분, 혼기도 안찬 나에게 유수한 집안의 아가씨를 소개시켜준다는 어머니까지.. ㅋㅋ (혼기가 차면 다시 말해보자고 말씀드렸다.)

하지만 이에 못지 않게 슬픈 일도 너무나 많은데, 며칠전에는 병원에서 반년전쯤 코로나 병동을 마련시키라는 정부의 압박으로 인하여 부득이하게 퇴원 시킨 환자분의 보호자를 만났다. 나이도 그렇게 많지 않으신 60세 정도의 할아버지셨는데, 굉장히 젠틀하시고 배우자분도 너무나 친절하고 연신 의료진에게 고맙다는 말씀을 하시던 분이셨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히 나는건 당시 할아버지는 척수에 어무마시한 크기의 염증 조직이 발생했고, 근본적인 치료는 정형외과와 협진을 하여 수술적인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었으나 당시 할아버지의 육체는 전신마취를 견딜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결국 항생제로 염증을 서서히 가라앉히는 수 밖에 없었다. 가장 독하다는 항생제를 3개월 가량 사용하였으나 체내 염증수치는 여전히 호전되지 않고 콩팥은 점점 망가지며 염증은 골반까지 퍼져 주치의인 내가 할 수 있는건 지속적인 항생제 사용 및 전반적인 컨디션 관리와 보호자분의 말동무가 되어드리는 것 정도 밖에 없었다.

그 중 다행인 것은 3개월 동안 할아버지의 의식은 잠깐씩 좋아졌었는데, 연신 나에게 고맙다는 말을 아끼지 않으셨다. 환자분은 결국 퇴원 후 한달 내로 임종을 맞이하셨고, 할머님께서는 마음을 추스리고 주변을 다시 돌볼 여유가생겨 나에게 감사함을 표하기 위해 병원에 들렸다고 했다. 얘기를 들으며 나도 벅차오르는 마음에 눈물을 참기가 어려웠고, 할머님 손을 잡고 나도 같이 눈물을 흘렸다.

할머님은 오랜 간병 생활로 척추와 경추가 모두 망가졌고 앞으로는 쉬고싶다고 하셨다.

삶이 가진 일상성은 지독하게도 현실적이고 산문적이어서 기반을 흔들 사건이 발생하지 않으면 감정이 비집고 들어올 틈을 허용하지 않는다. 삶의 일상성이 본인을 힘들게 한다면 주변을 둘러보아라, 자세히 바라보면 모든 것들이 희망과 환희로 가득 차 있을지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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